안도라에 왔으니 피레네 산맥을 몸소 느껴봐야 될 것 같아 마드리우-페라피타-클라로 계곡으로 트레킹을 갔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날씨가 흐리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게 살짝 불안해 가지말까 망설였지만 (이때 가지 말았어야 했었음) 저멀리 구름이 살짝 걷히고 보이는 푸르른 하늘이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해주사 출발.

구불구불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가 보니 입구 도착. 날씨는 여전히 흐렸지만 조금씩 내리던 빗방울은 그치고 공기도 상쾌하고 뭔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드는것이 벌써부터 피레네 산맥의 정기를 받고 있는거 같네 내가 (이때까지는 참 좋았음 느낌). 오늘 트레킹 코스는 산 정상이라 해도 무방할 일리야 호수를 찍고 다시 내려오는 당일치기 코스. 자 출발!

올라가는 내내 날씨는 역시 계속 흐렸지만 산속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니 너무나 느낌이 좋았다 역시 마더네이쳐 이러면서(이때까지도 참 좋았음 느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살짝 걷히고 스머프 색 하늘이 나타나니 오 씻 기분 업되고 (이때 진짜 좋았음 느낌) 역시 마더네이쳐 이러면서 랄랄라랄랄라랄라랄랄라 스머프 노래 부르고 가는데 갑자기 진짜 말도안되게 1초도 안되서 안개가 막 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싸일런트 힐 간지.

좀만 더 가면 사라지겠지 하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또 진짜 말도 안되게 비가 존나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비를 피해야겠다해서 발걸음을 재촉해 가다보니 대피소 발견.

싸가지고 온 식량을 섭취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 트레킹을 하시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도착을 하셨다. 그리고는 여기 말고 바로 뒤에 있는 대피소로 옮기자고 말씀하시는데 뭔 소리지하고 나와서 보니 바로 뒤에 더 좋은 산장 대피소가 있네. 안개 때문에 못봤던거 같은데 들어가보니 안에는 안전요원도 있고 산속에서 생존할수있게 기본적인 세팅이 되어있었다.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에서 오신 밥 할아버지, 안전요원은 안도라인 루제.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루제 말로는 아마 당일치기는 무리일거라고 하더라.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내가 생각해도 힘들듯한데 문제는 내가 이런 상황에 대비할 물건들 (침낭, 메트리스, 우비 등등) 을 두고 왔고 더 최악인건 이런 상황이 일어날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거지. 어떡하지.. 납득이 안되네 이런 내 자신이.. 뭐 일단 목적지인 일리야 호수에도 산장 대피소가 있다고 하니 오늘 밤은 거기서 보내기로 결정. 비가 그치고 루제와는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밥 할아버지와 함께 출발.

가는동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내 몸이 흠뻑젖어 다음 대피소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어떡하지.. 아직도 납득이 안되네 이런 내 자신이.. 역시 마더네이쳐 앞에 우리 인간은 좁밥. 다시 비가 그치고 출발.

비에 젖은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고 어느덧 목적지에 가까워졌는데 이게 또 정상에 가까워지다보니 바람이 존나 불고 비에 젖은 내 몸을 강타하는데 아 존나 추워.. 어떡하지.. 더더욱 납득이 안되네 이런 내 자신이.. 역시 마더네이쳐 앞에 우리 인간은 좁밥.

드디어 목적지 도착. 일리야 호수를 쳐다 볼 생각따위는 집어치우고 당장에 대피소에 들어가 몸을 말렸다. 그리고 혹시나 여분의 메트리스나 침낭이 있나하고 산장 여기저기 구석구석 디깅해봤는데 다행히 비스무리한거 발견. 그래도 오늘밤은 힘들듯. 밥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잡탕수프를 먹고 몸을 말리는데 역시 산속의 어둠은 일찍 찾아와 바로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말이 취침모드지 밤새 추워서 깼다 자고 깼다 자고 (할아버지 코골이 소리도 한몫 하셨음) 아 입돌아가는줄 알았네. 어떡하지.. 완전 납득이 안되네 이런 내 자신이..

결국에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늘 루트를 체킹하고 계시고 나는 산장 방명록에다가 글 남기고.. 다시 새 출발 모드로 재정비하고 출발.

목적지인 일리야 호수가 나오고 할아버지와 나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애초에 내 목적지는 여기였고 할아버지는 피레네 산맥을 지나 에스파냐로 향하시는 길이시기 때문. 할아버지는 얼마전에 일자리에서 짤리시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셔서 뭘 할까 고민하시다가 여기로 오셨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께서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젊으셨을적 여기를 이미 한번 와 보셨다고 하시던데 그때 여기를 다녀온 이후로 승승장구 하셨단다. 밥 할아버지 앞으로 남은 인생도 승승장구 하시고 맛있는 수프와 커피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나도 여기 걸었으니 앞으로 승승장구 할려나. 뭐 아무튼 일리야 호수 앞에서 잠시 감상타임을 즐기려고 했으나 바람이 매서워 바로 내려왔다. 내려와 보니 주위 냇가는 지난밤의 추위를 알려주듯이 얼어있고.. 아 이제 9월 시작인데..

하산하는 길에 말들을 만났다.

말들과 작별하고 내려오는데 이번에는 소들을 만났다. 얘네들이 일렬로 서서 내 앞길을 막고 있길래 잠깐 쫄았지만 나 역시 소띠라 정신적 교감을 하고 조용히 지나쳐왔다.

조금 더 내려가니 루제가 있는 산장대피소가 나왔다. 내가 들어가니 살아있었네? 그러면서 커피를 타주는데 야 내가 이렇게 살아서 멀쩡히 돌아왔지만 반죽어있는거나 마찬가지야 임마 웃는게 웃는게 아니고 걷는게 걷는게 아닌 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뭐 그런거.. 아무튼 커피 땡큐.

커피로 몸을 녹이고 루제와 작별인사한뒤 다시 출발. 어제와는 정반대의 날씨속에 주위를 둘러보니 또다른 느낌이 드는듯. 역시 마더네이쳐의 신비함은 끝을 알 수가 없네 이러면서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다 내려왔다. 내려와서 조사해보니까 내가 걸은 여기 마드리우-페라피타-클라로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전세계의 수많은 캠퍼들이 와서 캠핑도 하고 그러는 곳이더라. 어쩐지 카메라에는 다 담을 수 없는 경관과 여기저기 스팟을 보면서 여기서 캠핑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내가 죽기전에 꼭 다시 와서 캠핑해야지. 이거시 피레네! 마더네이쳐! 아 피곤해.. 간만에 트레킹좀 해보겠다고 깝쳤다가 마더네이쳐 앞에 좁밥되고 지금 온몸이 쑤신다. 마더네이쳐를 온몸으로 느낀 1박2일이었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마더네이쳐 앞에 우리 인간은 좁밥임 내가암. 무한 뤼스펙 마더네이쳐.

Posted by YONGMANI :